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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용서의 정신

by 혁고정신 2025. 7. 29.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추기경이자, 겸손과 사랑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종교를 넘어 국민 모두의 어른으로 존경받았고, 독재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화해와 용서를 설파하며 사회 통합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며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살아간 그의 삶은 지금도 우리에게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신앙과 인간다움의 길을 걷다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신앙과 봉사의 가치 아래 자라났습니다. 유복하지 않았던 그의 가정은 가난 속에서도 정직과 겸손을 강조했고, 이러한 성장 배경은 훗날 그가 살아가며 지닌 삶의 자세와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제가 되기를 꿈꾸었던 그는 일본 유학 시절에도 조선인의 정체성과 신앙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더 깊은 사유에 빠지게 됩니다. 그 혼란은 신앙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성찰로 이어졌고, 결국 한국 사회의 아픔을 품는 종교인이자 국민의 스승으로 거듭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1969년 47세의 나이로 한국 최초의 추기경에 임명됩니다. 이는 단순한 교계 직책을 넘어서, 세계 가톨릭 역사 속에서 아시아 교회의 위상과 역할이 새롭게 주목받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권위에 기대지 않고 오히려 더 낮은 자세로 국민과 교회의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대중은 그를 "추기경님"이라 부르기보다 "김수환 아저씨", "우리 할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친근하게 느꼈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온화한 미소는 수많은 이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격동기였으며, 군사정권과 독재, 노동운동, 민주화 투쟁 등 수많은 정치적 긴장이 뒤엉킨 시기였습니다. 김 추기경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종교인으로서의 중립성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신 체제와 광주민주화운동, 노동자의 권리 문제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며,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섰습니다. 특히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그는 가난한 이웃과 노동자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고민했고, 당시에는 금기시되던 ‘노동운동’과 ‘빈민 사목’의 정당성을 설파했습니다. 그가 강조한 "사람이 먼저입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그의 신앙과 철학, 그리고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통해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는 믿음은 그의 언행을 통해 끊임없이 확인되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종교의 본질이 ‘사랑’과 ‘용서’에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사회적 물결과 충돌하더라도, 상대를 정죄하지 않고 껴안는 태도를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을 지향하는 오늘날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단지 신자들에게 설교하는 사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질문을 던지고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국민의 목소리

김수환 추기경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용서와 화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 과정에서 겪은 분열과 상처, 그리고 적대의 감정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심했습니다. 특히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많은 이들이 분노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때, 그는 "화해 없이 평화는 없다"는 말을 남기며,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자 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결코 잘못을 눈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시대의 불의에 대해 지적했고, 권력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도 끝까지 미워하지 않았고, 잘못한 이들조차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단순한 종교적 관용을 넘어서, 한국 사회 전체에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위로하고, 독재 정권의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 감옥에 있는 정치범들에게 서신을 보내거나, 해고된 노동자들의 손을 직접 잡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행보는 단지 말로만 하는 연민이 아니라, 현장을 함께 살아내는 실천적 사랑이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다양한 종교, 계층, 정치 성향을 아우르며 대화와 타협의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종교 간의 대화, 지역 갈등의 조정, 정권 교체기의 국민 통합 메시지 등은 모두 그가 추구한 화해의 철학에 바탕을 둔 행동이었습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사회 전체가 극도의 불신과 분열 속에 있었지만, 그는 ‘희망을 포기하지 맙시다’라는 따뜻한 메시지로 많은 국민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종교인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추구했던 삶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표현입니다. 그는 특정한 종교 교리에 얽매이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존엄과 상처를 함께 바라보고, 거기서 치유와 회복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공동체 회복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살기를 원했습니다. 성당의 문턱을 낮추고, 지역의 노숙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 등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의 사목 활동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향하는 흐름이었고, 이 흐름은 결국 종교가 가져야 할 본질적인 책임과도 연결됩니다. 그는 고위 성직자이자 추기경이었지만, 늘 한 사람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손을 잡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지금도 살아 있는 김수환의 유산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87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길은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한 ‘국민의 장례식’이었으며, 모든 종교인과 정치인, 일반 시민들이 국적과 신념을 초월해 그의 삶을 기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빈소 앞에는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짧지만 깊은 메시지들이 줄을 이었고, 그의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서울 명동성당에는 그의 삶을 기념하는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의 말을 담은 책과 영상은 수많은 교육기관과 사회 운동 단체에서 꾸준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라는 문장은 이제 단순한 구호를 넘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철학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이 주는 교훈은 단지 과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여전히 다양한 갈등과 분열 속에 놓여 있고, 혐오와 대립의 언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준 용서와 포용, 진정한 리더십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입니다. 그는 지도자란 결코 위에서 명령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래에서 함께 짐을 나누는 존재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겸손’의 미덕을 온몸으로 실천했습니다. 스스로를 추기경이라 소개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작은 일꾼”이라 말하며, 평생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치권과 언론은 그의 말을 ‘가장 믿을 수 있는 메시지’로 여겼고, 국민들은 그를 통해 도덕과 양심의 기준을 되새겼습니다. 이러한 신뢰는 결코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며, 그의 삶 전체가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과 신념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진정한 용서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의 표현이라는 메시지는 우리가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할 가치입니다. 그는 생전에 “내가 남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랑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가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김수환, 그 이름은 인간 존엄의 상징이자,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을 조용히 비춰주는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