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착한 존재일까요, 아니면 욕심 많고 이기적인 존재일까요? 이 질문은 오랫동안 철학과 교육에서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동양철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논의가 바로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유학을 계승했지만 인간 본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맹자와 순자의 인성론을 바탕으로 각자의 철학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교육과 삶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쉽게 풀어 소개하겠습니다.
◈ 성선설 : 인간은 본래 착한가
맹자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성선설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모든 사람 안에는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시비지심), 남을 배려하는 마음(사양지심),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 네 가지 본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네 가지는 마치 씨앗처럼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환경과 교육에 따라 잘 자라거나 시들 수 있습니다.
맹자는 인간이 악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올바르게 길러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곧, 좋은 본성도 교육 없이 방치되면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친구를 때리는 행동을 했다면 그 아이의 본성이 악해서라기보다는, 올바른 감정 표현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맹자의 교육 철학 요약:
-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이다.
- 선한 본성은 교육과 환경에 따라 자란다.
- 도덕 교육은 본성을 키워주는 과정이다.
- 지도자는 국민의 선한 본성을 깨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맹자의 성선설은 오늘날에도 아동 중심 교육, 자율학습, 인성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교사나 부모는 간섭보다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접근입니다.
◈ 성악설 : 인간은 욕망 중심인가
순자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성악설이라 부르며, 인간은 교육과 규범이 없으면 본능대로 행동하여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순자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고, 편안함을 좋아하며, 자신을 먼저 생각합니다. 따라서 무질서한 본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禮)와 법 같은 외부 규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사람은 스스로 선해질 수 없으며,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바르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순자의 입장입니다.
순자의 교육 철학 요약:
- 인간은 본래 욕망 중심적이다.
-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해 예(규범)가 필요하다.
- 도덕과 질서는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 지도자는 사회 질서를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순자의 성악설은 생활지도, 규칙 교육, 학교 규율에 적용되는 철학입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 있으므로, 이를 제어하고 이끌어주는 규범 중심 교육이 필요하다는 관점입니다. 교사의 역할도 감시자 또는 질서를 세우는 지도자로 강조됩니다.
◈ 교육 : 성선설과 성악설의 만남
맹자와 순자는 출발점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교육이 인간을 바꾸는 힘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맹자는 선한 본성을 잘 키워줘야 한다고 보았고, 순자는 악한 본능을 규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교육이 없다면 인간은 완성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현대 교육에서의 적용 예:
구분 | 성선설(맹자) | 성악설(순자) |
---|---|---|
기본 전제 | 인간은 본래 선하다 | 인간은 본래 욕망 중심이다 |
교육 목표 | 선한 본성을 키우는 것 | 욕망을 통제하고 질서를 가르치는 것 |
교사의 역할 | 성장 도우미, 조력자 | 지도자, 규범 제공자 |
적용 사례 | 자율학습, 감정교육 | 생활지도, 행동 훈육 |
요즘 학교나 가정에서도 이 두 이론을 혼합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공감과 이해(맹자)를 중심으로 교육하고, 어떤 경우에는 규칙과 일관성(순자)을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지역 아동센터에서 교육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학습 격차나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다양한 성향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아이들을 맹자의 철학처럼, 무조건 믿고 선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규칙을 무시하고, 교사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선함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규칙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혼란만 생긴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순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생활 규칙을 정하고, 반복해서 알려주며 일관된 태도로 대응했습니다. 놀랍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고함을 치고 싸우던 아이가 친구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약속 시간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맹자와 순자의 철학은 어느 한쪽이 정답이 아니라, 아이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균형 있게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사의 역할은 그 균형을 찾아주는 안내자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은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주는 따뜻한 철학입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현실의 복잡함을 인정하고, 교육과 규범의 힘으로 인간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두 사상 모두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는 공통된 신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 철학의 균형 위에 서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든, 교실을 지키는 선생님이든, 사람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모든 분들이 이 두 시각을 번갈아 적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맹자처럼 사람의 본질을 믿고, 순자처럼 교육의 힘을 믿는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