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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문학 세계와 사실주의의 미학

by 혁고정신 2025. 7. 19.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스탕달(Stendhal)은 인간 심리의 복잡함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19세기 유럽 문학에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했다. 대표작 『적과 흑』과 『파르마의 수도원』을 통해 그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내면 탐구, 계급적 갈등, 자유의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이 글에서는 스탕달의 생애와 사상을 바탕으로 그의 문학이 사실주의 운동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고찰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본다.

스탕달
스탕달

사실의 언어로 인간을 말하다: 스탕달의 문학적 배경

스탕달(Stendhal, 본명 마리 앙리 베일, 1783~1842)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역사적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문인이다. 그는 문학사에서 종종 사실주의(realism)의 선구자로 평가되지만, 동시에 낭만주의적 정서와 계몽주의적 이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다층적 작가이기도 하다. 스탕달은 고전적 문체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의 욕망, 야망, 사랑, 위선, 열등감 같은 심리의 실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글을 썼고, 이를 통해 '소설은 거울처럼 도로를 비춰야 한다'는 문학관을 정립했다. 그가 태어난 시대는 개인이 사회 구조 안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봉건적 귀족 계급이 여전히 사회의 상층을 장악하고 있었고,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극도로 협소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 이후, 능력주의와 자수성가 신화가 부분적으로 가능해지며 새로운 형태의 사회 긴장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스탕달 문학에서 자주 다뤄지는 ‘사회적 상승 욕망’과 ‘개인의 윤리적 딜레마’라는 테마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스탕달은 평생을 통해 두 가지에 몰두했다. 하나는 심리적 진실성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구조다. 그는 인간의 심리를 단순화하거나 이상화하지 않았고, 특정 계급이나 인물군에 유리하게 묘사하지도 않았다. 대신 내면의 갈등, 타인과의 대립, 사회적 부조리 등을 사실적 언어로 풀어냈으며, 이러한 기조는 이후 플로베르, 발자크, 톨스토이 등 사실주의 문학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스탕달의 작품은 대체로 심리 서사와 정치·사회 비판이 결합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서사 구조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윤리를 함께 고찰하게 하는 고차원의 문학적 체험을 유도한다. 따라서 그의 문학은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적 거울’이라 부를 수 있다.

『적과 흑』과 『파르마의 수도원』 속 사실주의의 구현

스탕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1830)은 사실주의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줄리앵 소렐이라는 젊은 청년이 군대(적)와 성직자(흑)의 세계 사이에서 자신의 사회적 야망과 정체성을 탐색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줄리앵은 천민 출신으로, 출세를 위해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적 도덕성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러한 모순은 바로 당시 프랑스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 갈등이며, 스탕달은 이를 단지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으로 끌어올린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스탕달의 심리 묘사 방식이다. 그는 인물의 겉모습보다 내면의 혼란, 감정의 진폭, 의식의 흐름에 주목한다. 줄리앵이 느끼는 질투, 욕망, 죄의식은 실재하는 인간 심리의 복합적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는 이후 ‘내면적 사실주의(psychological realism)’의 기틀이 되며, 근대 소설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또 다른 걸작인 『파르마의 수도원』(La Chartreuse de Parme, 1839)은 스탕달의 정치적 통찰이 집약된 작품이다. 주인공 파브리스는 전쟁과 종교, 사랑이라는 세 가지 힘 사이에서 방황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인물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권력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묻는 철학적 소설이다. 스탕달은 이 작품을 통해 교회의 부패, 국가 권력의 폭력성, 인간 욕망의 불완전성을 동시에 드러내며, 그것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의 문학은 서술자와 독자의 거리를 유지하는 간접화법, 의식의 흐름 기법, 세부 묘사보다 심리 변화에 집중하는 문장 구성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완성된다. 또한 인물 간 대립을 통해 계급 간 긴장을 드러내고, 현실 속 불합리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는 오늘날 사회비판적 소설, 심리소설, 철학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선구적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스탕달은 ‘사실’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 속에서 인간 정신의 운동과 의미를 포착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것이 그를 사실주의의 창조자이자 문학적 철학자로 만드는 핵심적인 이유다.

현대 독자가 스탕달에게 배워야 할 것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수의 정보, 압축된 서사, 빠른 소비에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스탕달의 소설은 이러한 흐름과는 정반대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는 인간 존재의 복잡함을 빠르게 요약하거나 단순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한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며, 그의 갈등과 욕망을 천천히 곱씹게 만든다. 그 느림의 문학, 밀도의 문학은 오늘날 ‘깊이’라는 감각을 잃어버린 독서 행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스탕달은 ‘소설은 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거울’이라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현실 반영이 아니라, 현실을 비추며 그 의미를 사유하게 만드는 도구로서의 소설을 말한다. 그에게 소설은 윤리적 판단을 강요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맥락을 보여주고 독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드는 자유의 공간이었다. 이것은 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필요한 성찰의 방식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여전히 신분적 불평등, 계층 이동의 제한, 개인과 집단의 가치 충돌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스탕달이 다루었던 사회적 긴장과 윤리적 딜레마는 단지 19세기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다. 그의 문학이 여전히 생생하게 읽히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대면하게 하는 근본적 통찰 때문이다. 스탕달은 소설을 통해 말한다. 진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 심리와 사회적 조건의 총합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단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서사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성찰하는 주체로 존재해야 한다. 스탕달의 문학은 이러한 주체적 독서를 요구하며, 동시에 그 가치를 증명한다. 결국, 스탕달은 독자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이 시대의 줄리앵 소렐인가? 아니면 파브리스인가?” 그 질문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도 사회 속에서 의미를 탐색하고,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